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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여행이야기

과거 세계 최대 인구 밀집 지역 홍콩 구룡성채 역사 속으로 떠난 여행

by TechnoMBA 2025.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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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세계 최대 인구 밀집 지역
홍콩 구룡성채 역사속으로 떠난 여행


홍콩을 좋아하다 보니 다른 여행객들과는 달리
좀 더 디테일하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조금이나마 좋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홍콩의 구룡성채(Kowloon Walled City)
대한 역사로부터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홍콩의 구룡성채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복잡한 도시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군사 요새로 시작해 치외법권의
슬럼가로 악명을 떨치다 공원으로 탈바꿈한
이곳은 홍콩의 다층적인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2차 대전 이전에는 구룡채성이
유일한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무엇이 맞는지에
대한 결론이 확실히 나지는 않는것 같네요.

구룡성채의 기원, 독특한 특징, 마지막으로
공원으로의 변신 과정에 대해
매혹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홍콩 구룡채성 공원
Kowloon Walled City Park


구룡성채는 왜 생겼을까?
구룡성채의 기원



구룡성채의 역사는 19세기 청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42년 제1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홍콩섬이 영국에 할양되자
청나라는 구룡반도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1847년 구룡성채를 건설했습니다.

(당시에는 홍콩섬만 영국이 점령하였다고 하고 반대편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침사추이쪽은 청나라가 소유권을
가졌다고 하네요.)


아편전쟁@주간조선

폭 792m, 길이 429m, 높이 7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요새는 해적과 외세로부터
소금 생산지와 지역을 보호하는 군사 기지
최초 만들어졌습니다.

동·서·남문에는 32대의 대포가 배치되었고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며
홍콩섬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던 곳이죠.



1898년 영국이 신계지(New Territories)를
99년간 조차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조약에 따라 구룡성채는 명목상 청나라
(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로 남았지만
영국은 이곳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려 했습니다.

청나라 관리들이 추방되면서 이곳은
영국과 중국 어느 쪽의 주권도 제대로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대가 되었고
이 주권의 공백은 이후 이곳이 무법지대로
변모하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Inf News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점령이 끝나고
중국 내전으로 피난민들이 홍콩으로 몰려들면서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말에는 약 3만 5000명이
2.6헥타르(축구장 4개 크기)에 거주하며
인구 밀도가 평방킬로미터당 190만 명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최근에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들의 인구밀도가 화자화되었지만 구룡성채는 거기보다도 더욱더 심했다고 합니다.)


구룡성채의 독특한 특징

@Overall Partenership

구룡성채는 단순한 슬럼가를 넘어 독특한 도시
생태계를 형성한 곳이었습니다.
치외법권 상태로 인해 정부의 규제가 미치지 않자
무허가 건축물이 마구잡이로 쌓여 올라갔습니다.

원래 2~3층이던 건물들은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최대 15층까지 솟아올랐고
좁은 골목과 복잡한 통로로 얽힌
거대한 콘크리트 정글이 탄생했습니다.

햇빛이 차단된 내부 공간은 고시원 같은
단칸방으로 가득했고 건물의 안전성은
심각한 문제였다고 합니다.


@Reddit

이곳은 “마굴” 또는 “무법지대”로 불렸습니다.
삼합회 같은 범죄 조직이 활개를 쳤고
불법 도박, 마약 밀매, 무허가 의료 시술 등이
성행했습니다. 홍콩 내 불량식품의 상당수가
이곳에서 생산될 정도로 위생 상태도 열악했고
복잡한 미로 같은 구조는
외부인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CNN

하지만 구룡성채는 단순히 범죄의 온상만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주민은 평범한 노동자나
피난민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소규모 공장
식당, 상점이 운영되었고, 주민들은 서로 의지하며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홍콩채성공원

건축적으로도 독특했습니다.
도시계획이나 설계 없이 인구 증가에 따라
건물이 무질서하게 확장되었고
전선과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얽힌 모습은
현대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이곳은 홍콩의 다른 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독립된 도시처럼 운영되었죠.


구룡채성 공원으로의 탈바꿈


1980년대에 들어서며 구룡성채의
열악한 위생과 범죄 문제가 심각한 사회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결국 1987년 영국령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는 구룡성채 철거를 합의합니다.


@Wikipedia

27억 홍콩달러를 들여 약 3만 3000명 주민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1991~1992년에
강제 이주를 진행했습니다.

철거 작업은 1993년 3월부터 1994년 4월까지
이어졌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TimeOut

철거 후 이곳은 구룡성채공원
(Kowloon Walled City Park)으로
재탄생했습니다.

1995년 8월 공원 조성이 완료되었고
같은 해 12월 크리스토퍼 패튼 홍콩 총독이
공식 개원을 선언했습니다.
공원은 청나라 초기의 장난(江南) 정원을
모티브로 설계되었으며, 3.1만 평방미터
면적에 정원과 산책로, 전시 공간이 조성되었죠.


@Hongkong Tourism

현재 공원에는 과거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일부 역사적 유물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남문에서 발굴된 “구룡채성” 화강암 편액과
관리사무소 건물이 대표적입니다.

이 건물은 거의 재건 수준으로 보수되었지만
과거의 양식을 유지하며 전시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전시물은 구룡성채의 역사 사진과 모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센서 기반 전자 사진집과
프로젝터 영상이 방문객들에게 당시의 모습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Trip Advisor

공원 주변은 이제 고층 아파트와 부촌으로 변모해
과거의 슬럼가 이미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MTR 쿤통선 록푸(Lok Fu)역이나
튄마선 성웡토이(Sung Wong Toi)역에서
도보로 5~20분 거리에 위치한 공원
홍콩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평온한 휴식처로
이제는 사랑받고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Live Journal

구룡성채군사 요새에서 범죄의 소굴
그리고 평온한 공원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거쳤습니다.
그곳은 위험과 혼란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공원을 걷다 보면
콘크리트 정글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바람 속에 속삭이는 듯합니다.


@CNN

이곳을 방문한다면
전시관의 사진 한 장 정원의 나무 한 그루에
담긴 역사를 천천히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홍콩하면 구룡성채 위를 지나가던
커다란 비행기의 모습이 아직도 사진에서
보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홍콩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아닐까요?

(글 내용 위키피디어 쳇GPT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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